한능검CBT

제58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 (기본) 31번

2점개항기·대한제국임오군란, 조청 상민 수륙 무역 장정

밑줄 그은 ‘이 사건’의 결과로 옳은 것은?

31번 문항: 밑줄 그은 ‘이 사건’의 결과로 옳은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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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답④

자료 분석

구식 군인들이 신식 군대인 별기군과의 차별 등에 반발하여 일으켰고 왕비가 궁궐을 빠져나와 피란하였다는 내용을 통해 밑줄 그은 이 사건이 1882년에 일어난 임오군란임을 알 수 있다.

정답 해설

임오군란이 일어나자 조선 정부의 요청으로 청군이 개입하여 군란을 진압하고 흥선대원군을 톈진으로 압송하였다. 이후 청은 조선에 군대를 주둔시키고 마젠창과 묄렌도르프 등의 고문을 파견하였으며, 조청 상민 수륙 무역 장정을 체결하여 내정 간섭과 경제적 침투를 심화시켰다.

보기 해설

  • ①
    집강소가 설치되었다.

    집강소는 1894년 동학 농민 운동 때 전주 화약을 맺은 뒤 전라도 일대에 설치된 농민 자치 기구이다.

  • ②
    조사 시찰단이 파견되었다.

    조선 정부는 개화 정책을 추진하기 위해 임오군란 이전인 1881년에 일본으로 조사 시찰단을 파견하였다.

  • ③
    외규장각 도서가 약탈되었다.

    프랑스군이 강화도 외규장각의 도서와 의궤를 약탈한 것은 1866년 병인양요 때이다.

  • ④
    청의 내정 간섭이 심화되었다.

    임오군란을 진압한 청은 군대를 주둔시키고 고문을 파견하였으며, 조청 상민 수륙 무역 장정을 체결하여 조선에 대한 내정 간섭을 심화시켰다.

핵심 정리

  • 임오군란(1882): 구식 군인 차별 대우(밀린 급료 모래 섞인 쌀)로 발발, 흥선대원군의 일시 재집권
  • 청의 개입과 결과: 청군이 난을 진압하고 대원군 압송, 조청 상민 수륙 무역 장정 체결 및 고문 파견으로 내정 간섭 심화
  • 일본과의 조약: 제물포 조약 체결로 배상금 지불 및 일본 공사관 경비병 주둔 허용
개항기·대한제국임오군란, 조청 상민 수륙 무역 장정교차 검증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