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5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 (기본) 35번
2점개항기·대한제국국채보상운동, 대한매일신보
밑줄 그은 ‘이 운동’에 대한 설명으로 적절한 것은?

정답과 해설 보기해설 접기
정답②
자료 분석
나랏빚 1,300만 원을 갚기 위해 의연금을 모은 점, 담배를 끊어 성금을 모으거나 여성들이 비녀와 가락지를 보낸 점을 통해 밑줄 그은 이 운동이 1907년에 전개된 국채보상운동임을 알 수 있다.
정답 해설
국채보상운동은 대구에서 시작된 후 대한매일신보, 황성신문, 제국신문 등 언론사의 적극적인 보도와 모금 운동 지원을 받아 전국적으로 확산되었다.
보기 해설
- ①근우회를 중심으로 전개되었다.
근우회는 1927년 신간회의 자매 단체 성격으로 창립된 여성 운동 단체로 일제강점기에 활동하였다.
- ②대한매일신보 등 언론의 지원을 받았다.
국채보상운동은 대한매일신보, 황성신문, 제국신문 등 당시 언론사의 적극적인 모금 운동과 보도를 통해 전국으로 확산되었다.
- ③황국 중앙 총상회 조직에 영향을 주었다.
황국 중앙 총상회는 1898년 시전 상인들이 외국 상인의 상권 침탈에 맞서 상권을 수호하기 위해 조직하였다.
- ④조만식 등의 주도로 평양에서 시작되었다.
조만식 등의 주도로 평양에서 시작된 것은 1920년대 일제강점기에 전개된 물산장려운동이다.
핵심 정리
- 국채보상운동(1907년): 서상돈, 김광제 등의 제의로 대구에서 시작되어 대한매일신보 등의 언론 지원을 받아 전국으로 확산되었다.
- 통감부의 탄압: 일제 통감부는 양기탁 등을 국채보상금 횡령 혐의로 구속하는 등 탄압하여 운동을 중단시켰다.
- 물산장려운동(1920년대): 조만식 등이 주도하여 평양에서 시작된 국산품 애용 운동으로, 국채보상운동과 단골 비교 출제 대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