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7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 (심화) 18번
2점조선 전기무오사화, 김종직
(가) 사건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정답과 해설 보기해설 접기
정답②
자료 분석
연산군 때 유자광과 이극돈이 주도하였고, 김종직의 후학들이 화를 입었으며 이미 사망한 김종직이 부관참시를 당했다는 서술을 통해 (가) 사건이 1498년(연산군 4년)에 일어난 무오사화임을 알 수 있다.
정답 해설
무오사화는 김종직의 제자 김일손이 세조의 왕위 찬탈을 비판한 스승의 글인 조의제문을 사초에 실은 것을 훈구파 유자광과 이극돈 등이 문제 삼으면서 일어났다.
보기 해설
- ①계유정난의 배경이 되었다.
계유정난은 단종 때 수양대군이 정권을 잡기 위해 김종서 등을 살해한 사건으로, 1498년에 일어난 무오사화보다 앞선 1453년의 일이다.
- ②조의제문이 발단이 되어 일어났다.
무오사화는 김일손이 스승 김종직의 조의제문을 성종실록 편찬을 위한 사초에 실은 것이 발단이 되어 일어났다.
- ③반정 공신의 위훈 삭제를 주장하였다.
중종 때 조광조를 비롯한 사림 세력이 공신들의 위훈 삭제를 주장한 것은 기묘사화의 배경이 되었다.
- ④윤임 일파가 제거되는 결과를 가져왔다.
외척 세력인 윤임 일파(대윤)가 윤원형 일파(소윤)에 의해 제거된 것은 명종 때의 을사사화이다.
- ⑤동인이 남인과 북인으로 나뉘는 계기가 되었다.
동인이 남인과 북인으로 분열된 계기는 선조 때 정철의 세자 책봉 건의(건저의 사건)에 대한 처벌 수위 차이 등이었다.
핵심 정리
- 무오사화(1498, 연산군): 김일손의 조의제문 사초 수록이 발단, 김종직 부관참시 및 사림 숙청
- 갑자사화(1504, 연산군): 연산군 생모 폐비 윤씨 사사 사건이 계기
- 기묘사화(1519, 중종): 조광조의 개혁 정치와 반정 공신 위훈 삭제에 반발하여 발생
- 을사사화(1545, 명종): 외척 세력 간의 대립(대윤 윤임과 소윤 윤원형)으로 발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