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7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 (심화) 38번
1점개항기·대한제국헤이그 특사, 을사늑약
밑줄 그은 ‘특사’가 파견된 배경으로 가장 적절한 것은?

정답과 해설 보기해설 접기
정답③
자료 분석
제시된 전보에서 헤이그 만국평화회의, 이상설, 한국 황제가 파견한 특사, 일본의 외교권 탈취 등의 단서를 통해 밑줄 그은 특사가 1907년 고종이 네덜란드 헤이그로 파견한 헤이그 특사(이상설, 이준, 이위종)임을 알 수 있다.
정답 해설
고종은 1905년 일제가 강제로 체결하여 외교권을 강탈한 을사늑약의 불법성과 부당함을 전 세계에 폭로하고자 1907년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열린 제2회 만국평화회의에 특사를 파견하였다.
보기 해설
- ①임오군란이 일어났다.
임오군란은 1882년 구식 군인에 대한 차별 대우와 밀린 급료 문제 등으로 인해 일어난 사건이다.
- ②집강소가 설치되었다.
집강소는 1894년 동학 농민 운동 당시 전주 화약 체결 후 전라도 일대에 설치된 농민 자치 기구이다.
- ③을사늑약이 체결되었다.
1905년 일제가 강제로 체결한 을사늑약으로 외교권이 박탈되자, 고종은 이에 대한 부당성을 국제 사회에 알리기 위해 1907년 헤이그 만국평화회의에 특사를 파견하였다.
- ④조선 태형령이 제정되었다.
조선 태형령은 1910년대 일제 무단 통치기인 1912년에 제정된 법령이다.
- ⑤대한 제국의 군대가 해산되었다.
대한제국의 군대 해산은 헤이그 특사 파견을 구실로 고종이 강제 퇴위당한 후인 1907년 8월에 단행된 것으로, 특사 파견의 결과에 해당한다.
핵심 정리
- 헤이그 특사(1907): 고종이 이상설, 이준, 이위종을 네덜란드 헤이그의 제2회 만국평화회의에 파견함
- 파견 배경: 1905년 일제가 강제로 체결한 을사늑약(외교권 강탈)의 무효와 부당성을 폭로하기 위함
- 파견 결과 및 영향: 일제는 이를 구실로 고종을 강제 퇴위시키고 한일신협약(정미7조약) 체결 및 군대 해산을 강행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