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9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 (심화) 14번
2점고려거란의 침입, 나성 축조
(가)에 대한 고려의 대응으로 옳은 것은?

정답과 해설 보기해설 접기
정답③
자료 분석
현종 2년에 군사를 일으켜 침입한 점, 국왕의 남쪽 피란(나주 피란), 송악성(개경) 주둔, 적을 물리치기 위해 대장경판(초조대장경) 조판을 맹세한 기록을 통해 (가)는 거란(요)임을 알 수 있다.
정답 해설
거란의 3차 침입(귀주 대첩) 이후 강감찬의 건의를 받아들여 침략에 대비하기 위해 개경 주위에 나성을 축조하였다.
보기 해설
- ①처인성에서 살리타를 사살하였다.
몽골의 제2차 침입 당시 김윤후와 승병, 백성들이 처인성 전투에서 몽골군 지휘관 살리타를 사살하였다.
- ②박위를 파견하여 근거지를 토벌하였다.
고려 말 창왕 때 왜구의 침략에 대응하여 박위를 파견하고 왜구의 근거지인 대마도(쓰시마섬)를 정벌하였다.
- ③개경을 방어하기 위해 나성을 축조하였다.
거란의 제3차 침입을 격퇴한 후 강감찬의 건의에 따라 개경 주위에 나성을 축조하여 외침에 대비하였다.
- ④삼수병으로 구성된 훈련도감을 설치하였다.
조선 선조 때 임진왜란 중 왜군에 맞서기 위해 유성룡의 건의로 포수·사수·살수로 구성된 훈련도감을 설치하였다.
- ⑤강화도로 도읍을 옮겨 장기 항전을 준비하였다.
몽골의 침입에 대응하여 최우 무신 정권이 도읍을 강화도로 옮겨 장기 항전을 전개하였다.
핵심 정리
- 거란 침입과 대응: 1차(서희의 외교 담판과 강동 6주 획득), 2차(양규의 활약, 현종의 나주 피란, 초조대장경 조판 착수), 3차(강감찬의 귀주 대첩)
- 거란 침입 이후 방어 시설: 개경 나성 축조(강감찬 건의), 압록강 어귀에서 동해안 도련포에 이르는 천리장성 축조(덕종~정종)
- 몽골 침입과 대응: 강화도 천도(최우), 처인성 전투(김윤후의 살리타 사살), 재조대장경(팔만대장경) 조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