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1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 (심화) 31번
2점개항기·대한제국흥선대원군, 신미양요, 척화비
(가) 사건 이후에 전개된 사실로 옳은 것은?

정답과 해설 보기해설 접기
정답①
자료 분석
자료에서 어재연 장군, 광성보 전투, 로저스 제독이 이끄는 미군 침략 등의 단서를 통해 (가) 사건이 1871년에 일어난 신미양요임을 알 수 있다.
정답 해설
흥선대원군은 병인양요와 신미양요를 거치며 통상 수교 거부 의지를 널리 천명하기 위해 1871년에 서울 종로를 비롯한 전국 각지에 척화비를 건립하였다.
보기 해설
- ①종로와 전국 각지에 척화비가 세워졌다.
흥선대원군은 신미양요를 겪은 직후인 1871년에 전국 각지에 척화비를 세워 쇄국 의지를 확고히 하였다.
- ②평양 관민이 제너럴 셔먼호를 불태웠다.
평양 관민이 미국 상선 제너럴 셔먼호를 불태운 사건은 1866년의 일로, 신미양요(1871)보다 앞선 시기에 일어났다.
- ③한성근 부대가 문수산성에서 항전하였다.
한성근 부대가 문수산성에서 프랑스군을 맞아 싸운 것은 병인양요(1866) 당시이다.
- ④신유박해로 많은 천주교도가 처형되었다.
신유박해는 조선 후기 순조 즉위년인 1801년에 일어난 대규모 천주교 박해 사건이다.
- ⑤오페르트가 남연군 묘 도굴을 시도하였다.
독일 상인 오페르트가 흥선대원군의 아버지 남연군의 묘를 도굴하려다 실패한 사건은 1868년에 발생하였다.
핵심 정리
- 흥선대원군 시기 대외 사건 순서: 병인박해(1866) -> 제너럴 셔먼호 사건(1866) -> 병인양요(1866) -> 오페르트 도굴 사건(1868) -> 신미양요(1871) -> 척화비 건립(1871)
- 신미양요(1871): 제너럴 셔먼호 사건을 구실로 로저스 제독의 미군 함대 침입, 어재연 부대의 광성보 결사 항전
- 척화비 건립(1871): 신미양요 직후 서양 세력의 침략에 맞서 통상 수교 거부 의지를 대내외에 확고히 천명하고자 종로 및 전국 요충지에 건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