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3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 (심화) 11번
2점남북국후백제, 견훤
(가) 인물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정답과 해설 보기해설 접기
정답③
자료 분석
완산주를 도읍으로 삼아 나라를 세웠고 신라 금성을 습격하여 경애왕을 죽게 하였으며 금산사에 유폐되었다가 탈출하여 고려에 귀부하였다는 내용을 통해 (가) 인물이 후백제를 세운 견훤임을 알 수 있다.
정답 해설
견훤은 후백제를 건국한 후 대외적 위상을 높이고 국제적 지위를 인정받기 위해 중국 5대 10국 시대의 후당과 오월에 사신을 파견하여 외교 관계를 맺었다.
보기 해설
- ①공산 전투에서 전사하였다.
공산 전투에서 전사한 인물은 고려의 신숭겸과 김락 등이며 견훤은 이 전투에서 왕건의 고려군을 크게 격파하였다.
- ②금마저에 미륵사를 창건하였다.
금마저(익산)에 미륵사를 창건한 인물은 백제 무왕이다.
- ③후당과 오월에 사신을 파견하였다.
견훤은 후백제의 대외적 정통성을 인정받고 고려를 견제하기 위해 중국 5대 10국 시대의 후당과 오월에 사신을 파견하였다.
- ④김흠돌 등 진골 세력을 숙청하였다.
김흠돌의 난을 진압하고 진골 귀족 세력을 숙청하여 전제 왕권을 확립한 인물은 통일 신라의 신문왕이다.
- ⑤국호를 마진으로 바꾸고 철원으로 천도하였다.
국호를 마진으로 바꾸고 수도를 송악에서 철원으로 옮긴 인물은 후고구려를 세운 궁예이다.
핵심 정리
- 견훤의 후백제 건국: 상주 출신의 군인으로 무진주(광주)를 거쳐 완산주(전주)에 도읍을 정하고 후백제를 건국하였다(900).
- 견훤의 대외 관계: 중국 오대십국의 후당 및 오월에 사신을 보내 외교 관계를 맺었다.
- 신라 공격과 고려 귀부: 대구 공산 전투에서 고려군을 크게 격파하였으나, 후계자 문제로 아들 신검에 의해 금산사에 유폐되었다가 탈출하여 왕건에게 귀부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