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능검CBT

제64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 (심화) 21번

2점조선 후기임술농민봉기, 삼정이정청

다음 상황이 전개된 배경으로 옳은 것은?

21번 문항: 다음 상황이 전개된 배경으로 옳은 것은?
정답과 해설 보기해설 접기
정답⑤

자료 분석

안핵사로 파견된 박규수의 건의와 삼정이정청 설치라는 단서를 통해 1862년(철종 13년) 임술농민봉기(진주 농민 봉기) 수습 과정임을 알 수 있다.

정답 해설

1862년 경상우병사 백낙신의 극심한 수탈에 맞서 유계춘 등을 중심으로 진주 농민 봉기가 발발하였고, 정부는 이를 수습하기 위해 안핵사 박규수를 파견하고 삼정이정청을 설치하였다.

보기 해설

  • ①
    이만손 등이 영남 만인소를 올렸다.

    1881년 김홍집이 유포한 조선책략에 반발하여 이만손 등 영남 유생들이 개화 정책에 반대하며 올린 상소이다.

  • ②
    운요호가 강화도와 영종도를 공격하였다.

    1875년 일본이 조선에 무력으로 개항을 강요하기 위해 일으킨 사건으로, 강화도 조약 체결의 계기가 되었다.

  • ③
    동학교도가 교조 신원을 주장하며 삼례 집회를 개최하였다.

    1892년 동학 교도들이 교조 최제우의 억울한 누명을 벗기고 포교의 자유를 요구하며 개최한 집회이다.

  • ④
    황사영이 외국 군대의 출병을 요청하는 백서를 작성하였다.

    1801년 신유박해 당시 황사영이 베이징의 프랑스 주교에게 서양 군함과 군대의 파견을 요청하려다 발각된 사건이다.

  • ⑤
    백낙신의 탐학이 발단이 되어 진주에서 농민들이 봉기하였다.

    1862년 경상우병사 백낙신의 가혹한 수탈에 맞서 진주 농민 봉기가 일어났으며, 정부는 안핵사 박규수를 파견하고 삼정이정청을 설치하여 사태를 수습하고자 하였다.

핵심 정리

  • 임술농민봉기(1862): 백낙신의 탐학에 저항하여 진주에서 유계춘을 중심으로 봉기 발발
  • 정부의 수습책: 안핵사 박규수 파견, 삼정의 문란을 바로잡기 위한 삼정이정청 설치
  • 결과: 근본적인 개혁 없이 삼정이정청이 곧 폐지되어 농민들의 불만이 지속됨
조선 후기임술농민봉기, 삼정이정청교차 검증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