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4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 (심화) 29번
2점개항기·대한제국최익현, 왜양일체론, 을사의병
(가) 인물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정답과 해설 보기해설 접기
정답③
자료 분석
흥선 대원군의 하야를 요구한 계유상소(1873년), 도끼를 메고 궐 앞에 엎드려 왜양일체론을 주장한 지부복궐척화의소(1876년), 을미개혁 당시 단발령에 반대한 상소 등을 통해 (가) 인물이 최익현임을 알 수 있다.
정답 해설
최익현은 1905년 을사늑약 체결에 격분하여 1906년 전라북도 태인에서 제자 임병찬 등과 함께 의병을 일으켜 항일 투쟁을 전개하였다.
보기 해설
- ①대한 광복회를 조직하여 친일파를 처단하였다.
1915년 대구에서 대한 광복회를 결성하여 군자금을 모으고 친일파를 처단한 인물은 박상진이다.
- ②국권 피탈 과정을 정리한 한국통사를 집필하였다.
한국통사를 저술하여 일제의 침략 과정과 국권 피탈사를 정리한 인물은 박은식이다.
- ③을사늑약 체결에 반대하여 태인에서 의병을 일으켰다.
최익현은 1905년 을사늑약이 체결되자 1906년 전라북도 태인에서 임병찬 등과 함께 의병을 일으켰다.
- ④13도 창의군을 지휘하여 서울 진공 작전을 전개하였다.
1907년 정미의병 당시 13도 창의군을 결성하여 서울 진공 작전을 전개한 인물은 총대장 이인영과 군사장 허위이다.
- ⑤보국안민을 기치로 우금치에서 일본군 및 관군에 맞서 싸웠다.
1894년 제2차 동학 농민 운동 때 보국안민을 기치로 공주 우금치 전투를 이끈 세력은 전봉준 등의 동학 농민군이다.
핵심 정리
- 최익현의 계유상소(1873)로 흥선 대원군이 하야하고 고종의 친정이 시작되었다.
- 1876년 지부복궐척화의소를 올려 왜양일체론을 주장하며 개항에 반대하였다.
- 을사의병(1906) 때 전북 태인에서 기병하였으며 이후 쓰시마섬(대마도)에 유배되어 순국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