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7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 (심화) 36번
2점개항기·대한제국제1차 한일협약, 헤이그 특사, 군대 해산
(가), (나) 사이의 시기에 있었던 사실로 옳은 것은?

정답과 해설 보기해설 접기
정답⑤
자료 분석
(가)는 제1차 한일협약(1904년 8월) 체결 이후 메가타 슈타로가 재정 고문으로 부임한 직후의 상황이다. (나)는 정미7조약(한일신협약) 체결에 따른 군대 해산(1907년 8월) 직후 해산 군인들이 의병에 합류하여 정미의병이 일어난 상황이다.
정답 해설
고종이 을사늑약(1905)의 불법성을 세계에 알리기 위해 1907년 6월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열린 제2회 만국 평화 회의에 이상설, 이준, 이위종을 특사로 파견하였다. 일제는 이를 트집 잡아 고종을 강제 퇴위시키고 군대를 해산(1907년 8월)하였으므로, 헤이그 특사 파견은 (가)와 (나) 사이 시기에 일어난 사실이다.
보기 해설
- ①데라우치가 초대 총독으로 부임하였다.
데라우치 마사타케가 초대 조선 총독으로 부임한 것은 국권을 피탈당한 1910년의 일로 (나) 이후이다.
- ②13도 창의군이 서울 진공 작전을 전개하였다.
군대 해산 이후 전국의 의병이 연합한 13도 창의군이 서울 진공 작전을 전개한 것은 1908년 1월로 (나) 이후이다.
- ③기유각서를 통해 일제에 사법권을 박탈당하였다.
일제가 기유각서를 강제로 체결하여 대한제국의 사법권을 강탈한 것은 1909년으로 (나) 이후이다.
- ④상권 수호를 위해 황국 중앙 총상회가 조직되었다.
시전 상인들이 외국 상인의 상권 침탈에 대항하여 황국 중앙 총상회를 조직한 것은 1898년으로 (가) 이전이다.
- ⑤헤이그에서 열린 만국 평화 회의에 특사가 파견되었다.
고종은 을사늑약의 무효를 알리기 위해 1907년 6월 네덜란드 헤이그의 만국 평화 회의에 특사를 파견하였으므로 (가)와 (나) 사이의 시기에 해당한다.
핵심 정리
- 제1차 한일협약(1904): 재정 고문 메가타, 외교 고문 스티븐스 파견
- 을사늑약(1905): 외교권 박탈 및 통감부 설치
- 헤이그 특사 파견(1907. 6.): 이상설, 이준, 이위종 파견
- 군대 해산(1907. 8.)과 정미의병: 해산 군인의 합류로 의병 전쟁으로 발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