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8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 (심화) 29번
2점시대 통합개성, 지역사
다음 특별전에서 볼 수 있는 도시의 역사에 대한 설명으로 적절하지 않은 것은?

정답과 해설 보기해설 접기
정답④
자료 분석
자료에 제시된 송악, 개주, 열린 성의 도시 특별전, 여지도 속 옛 궁성 등의 단서를 통해 해당 도시가 고려의 수도였던 개성(개경)임을 알 수 있다.
정답 해설
일제 강점기인 1931년 평원고무공장 파업 노동자였던 강주룡이 임금 삭감에 반대하여 지붕 위 농성을 벌인 을밀대는 개성이 아니라 평양에 위치하므로 개성의 역사로 적절하지 않다.
보기 해설
- ①고려 태조 왕건이 도읍으로 삼았다.
태조 왕건은 919년 철원에서 송악으로 도읍을 옮겨 고려의 수도로 삼았다.
- ②원의 영향을 받은 경천사지 십층 석탑이 축조되었다.
고려 후기 충목왕 때 원의 영향을 받아 대리석으로 축조된 경천사지 십층 석탑은 개성에 세워졌다.
- ③조선 후기 송상이 근거지로 삼아 전국적으로 활동하였다.
개성을 근거지로 삼은 개성 상인인 송상은 전국에 지점인 송방을 두고 인삼 유통과 대외 무역 등으로 전국적인 상업망을 형성하였다.
- ④일제 강점기 강주룡이 을밀대 지붕 위에서 고공 농성을 하였다.
1931년 여성 노동자 강주룡이 임금 삭감에 저항하여 고공 농성을 벌인 을밀대는 개성이 아니라 평양에 위치한다.
- ⑤북위 38도선 분할 이후 남한에 속했다가 정전 협정으로 북한 지역이 되었다.
개성은 해방 직후 38도선 이남에 위치하여 남한 관할이었으나 6·25 전쟁 이후 1953년 정전 협정으로 군사분계선 이북의 북한 지역이 되었다.
핵심 정리
- 개성: 고려의 도읍, 만월대 궁터, 선죽교, 경천사지 십층 석탑, 숭양서원 등 소재
- 송상(개성 상인): 전국에 송방 설치, 인삼 재배 및 유통, 사개송도치부법 사용
- 강주룡의 을밀대 고공 농성: 1931년 평양 평원고무공장 파업 투쟁(평양 관련 사실)
- 개성의 현대사: 해방 직후 북위 38도선 이남(남한)이었다가 6·25 전쟁 정전 협정으로 북한 지역으로 편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