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0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 (심화) 4번
2점삼국·가야고구려, 소수림왕
(가) 왕의 재위 시기에 있었던 사실로 옳은 것은?

정답과 해설 보기해설 접기
정답①
자료 분석
고구려 제17대 왕, 율령 반포, 전진에 사신 파견 및 교류, 태학 설립 등을 통해 (가) 왕이 고구려 소수림왕임을 알 수 있다.
정답 해설
소수림왕은 고국원왕 전사 이후 국가적 위기를 극복하고 중앙 집권 체제를 강화하기 위해 372년에 전진의 승려 순도를 통해 불교를 공인하고 수용하였다.
보기 해설
- ①승려 순도를 통해 불교를 수용하였다.
소수림왕은 372년 전진에서 온 승려 순도를 맞이하여 불교를 수용하였다.
- ②낙랑군을 축출하여 영토를 확장하였다.
313년 낙랑군을 축출하여 대동강 유역을 차지한 왕은 미천왕이다.
- ③영락이라는 독자적인 연호를 사용하였다.
우리나라 최초로 영락이라는 독자적인 연호를 사용한 왕은 광개토대왕이다.
- ④을지문덕이 살수에서 수의 군대를 물리쳤다.
을지문덕이 살수에서 수나라 군대를 크게 격파한 살수대첩은 영양왕 때인 612년에 일어났다.
- ⑤이문진이 유기를 간추린 신집 5권을 편찬하였다.
이문진에게 유기를 간추려 신집 5권을 편찬하도록 한 왕은 영양왕이다.
핵심 정리
- 소수림왕의 내정 개혁: 태학 설립(372), 불교 수용(372, 전진 순도), 율령 반포(373)
- 미천왕: 서안평 점령(311), 낙랑군 축출(313), 대방군 축출(314)
- 영양왕: 온달의 아차산성 전투, 이문진의 신집 5권 편찬(600), 살수대첩(612, 을지문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