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0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 (심화) 9번
3점남북국통일 신라, 원성왕 즉위, 김주원
다음 상황이 나타난 시기를 연표에서 옳게 고른 것은?

정답과 해설 보기해설 접기
정답④
자료 분석
각간 김경신, 김주원, 선덕왕의 사망 등의 단서를 통해, 신라 선덕왕 사후 상대등 김경신이 김주원을 제치고 왕위에 올라 원성왕이 되는 설화(785년, 삼국유사 소재)를 나타낸 자료임을 알 수 있다.
정답 해설
선덕왕이 후사 없이 죽자 나라 사람들이 김주원을 왕으로 추대하였으나 북천에 물이 불어나 궁궐로 들어오지 못하자, 김경신이 먼저 입궁하여 원성왕으로 즉위하였다(785년). 이는 혜공왕 피살(780년) 이후이자 장보고의 청해진 설치(828년) 이전이므로 (라) 시기에 해당한다.
보기 해설
- ①(가)
654년 무열왕 즉위부터 681년 신문왕 때 김흠돌의 난이 일어난 사이의 시기이다.
- ②(나)
681년 김흠돌의 난부터 722년 성덕왕 때 백성에게 정전을 지급한 사이의 시기이다.
- ③(다)
722년 정전 지급부터 780년 혜공왕 피살로 신라 중대가 끝나는 사이의 시기이다.
- ④(라)
김경신이 김주원을 밀어내고 원성왕으로 즉위한 해는 785년으로, 혜공왕 피살(780년)과 청해진 설치(828년) 사이의 시기에 해당한다.
- ⑤(마)
828년 흥덕왕 때 장보고의 청해진 설치부터 889년 진성여왕 때 원종과 애노의 난이 일어난 사이의 시기이다.
핵심 정리
- 신라 하대 왕위 쟁탈전: 혜공왕 피살(780년) 이후 선덕왕이 즉위하며 신라 하대가 시작되었고, 진골 귀족 간의 치열한 왕위 쟁탈전이 전개되었다.
- 원성왕의 즉위와 정책: 김경신이 785년에 원성왕으로 즉위한 뒤 유교 경전의 이해도에 따라 인재를 등용하는 독서삼품과(788년)를 시행하였다.
- 김헌창의 난(822년): 왕위 경쟁에서 밀려 강릉(명주)으로 물러났던 김주원의 아들 김헌창이 헌덕왕 때 국호를 장안, 연호를 경운이라 하며 반란을 일으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