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0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 (심화) 28번
3점개항기·대한제국병인양요, 신미양요, 오페르트 도굴 사건
(가), (나) 사이의 시기에 있었던 사실로 옳은 것은?

정답과 해설 보기해설 접기
정답②
자료 분석
(가)는 정족산성, 양헌수 등의 단서를 통해 1866년 프랑스 함대가 침략한 병인양요임을 알 수 있다. (나)는 미국 배, 광성진, 어재연 등의 단서를 통해 1871년 미국 함대가 침략한 신미양요임을 알 수 있다.
정답 해설
독일 상인 오페르트가 통상을 요구하며 흥선대원군의 아버지인 남연군의 묘를 도굴하려다 미수에 그친 사건은 1868년에 발생하였다. 이는 병인양요(1866년)와 신미양요(1871년) 사이의 사실로 옳다.
보기 해설
- ①일본 군함 운요호가 영종도를 공격하였다.
일본 군함 운요호가 강화도 초지진과 영종도를 포격한 운요호 사건은 1875년에 일어났으므로 (나) 이후의 사실이다.
- ②오페르트가 남연군 묘의 도굴을 시도하였다.
독일 상인 오페르트가 충청도 덕산에 있는 흥선대원군의 아버지 남연군의 묘를 도굴하려다 실패한 사건은 1868년에 발생하였으므로 (가)와 (나) 사이의 사실이다.
- ③마젠창과 묄렌도르프가 고문으로 파견되었다.
청이 임오군란(1882년)을 진압한 뒤 조선에 고문으로 마젠창과 독일인 묄렌도르프를 파견하였으므로 (나) 이후의 사실이다.
- ④영국군이 러시아를 견제하기 위해 거문도를 점령하였다.
영국이 러시아의 남하를 견제한다는 구실로 거문도를 불법 점령한 거문도 사건은 1885년에 시작되었으므로 (나) 이후의 사실이다.
- ⑤황사영이 외국 군대의 출병을 요청하는 백서를 작성하였다.
황사영이 신유박해(1801년) 당시 북경 주재 주교에게 서양 군대의 출병을 요청하는 편지를 쓰려다 적발된 황사영 백서 사건은 1801년의 일이므로 (가) 이전의 사실이다.
핵심 정리
- 흥선대원군 시기 통상 수교 거부 정책 전개 순서: 병인박해 및 병인양요(1866) -> 오페르트 도굴 사건(1868) -> 신미양요(1871) -> 척화비 건립(1871)
- 병인양요(1866): 한성근(문수산성), 양헌수(정족산성) 활약 및 프랑스군의 외규장각 의궤 등 문화재 약탈
- 신미양요(1871): 어재연 부대의 광성진 결사항전 및 수자기 약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