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1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 (심화) 26번
2점조선 후기공노비 해방, 조선 후기 사회상
다음 가상 대화가 이루어진 시기에 볼 수 있는 모습으로 적절하지 않은 것은?

정답과 해설 보기해설 접기
정답②
자료 분석
선왕이 노비추쇄관을 혁파하였다는 것은 정조 때의 조치이고, 각 궁방과 중앙 관청의 노비를 양민으로 삼고 노비문서를 불태웠다는 것은 순조 1년(1801)에 단행된 공노비 해방을 가리킨다. 따라서 대화가 이루어진 시기는 조선 후기이다.
정답 해설
염포 왜관은 세종 때 개항된 삼포 중 하나로 조선 전기의 교역 장소이다. 임진왜란 이후 조선 후기에는 부산(초량)에만 왜관이 설치되어 교역이 이루어졌으므로 염포 왜관에서 교역하는 상인은 볼 수 없다.
보기 해설
- ①담배 농사를 짓는 농민
조선 후기에는 담배, 인삼, 고추, 면화 등 상품 작물의 재배가 널리 확산되었다.
- ②염포 왜관에서 교역하는 상인
염포는 조선 전기 세종 때 개항된 삼포 중 하나이다. 임진왜란 이후 조선 후기에는 부산의 왜관(초량왜관)에서만 대일 교역이 이루어졌다.
- ③세책가에서 춘향전을 빌리는 부녀자
조선 후기에는 한글 소설이 대중화되면서 돈을 받고 책을 빌려주는 세책가가 번성하였다.
- ④관청에 필요한 물품을 납품하는 공인
조선 후기 대동법 실시에 따라 국가에서 필요한 관수품을 시장에서 조달하여 납품하는 공인이 활약하였다.
- ⑤송파장에서 산대놀이 공연을 벌이는 광대
조선 후기 상업이 발달한 장시에서 탈춤, 산대놀이 등 서민 문화 공연이 활발하게 펼쳐졌다.
핵심 정리
- 순조 1년(1801) 각 궁방과 중앙 관청에 소속된 공노비 6만 6천여 명을 해방하고 공노비안을 소각하였다.
- 조선 전기에 삼포(부산포, 제포, 염포)가 개항되었으나, 임진왜란 이후 조선 후기에는 부산(두모포, 이후 초량) 왜관만 개방되었다.
- 조선 후기에는 상품 작물 재배, 공인의 활동, 한글 소설 및 세책가 유행, 탈춤과 판소리 등 서민 문화가 발달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