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2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 (심화) 26번
2점조선 후기송시열, 기해예송
(가) 인물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정답과 해설 보기해설 접기
정답①
자료 분석
효종 즉위년에 명에 대한 의리와 북벌의 뜻을 담은 기축봉사를 올린 점, 숙종 때 희빈 장씨의 아들(경종)이 원자로 책봉되는 것에 반대하다가 기사환국으로 제주도에 유배된 점을 통해 (가) 인물이 송시열임을 알 수 있다.
정답 해설
송시열은 1659년 효종이 승하하자 서인의 영수로서 효종이 왕통을 이었으나 차자라는 원칙을 내세워 자의대비의 복제 기간으로 1년복(기년설)을 주장하였다.
보기 해설
- ①기해 예송에서 기년설을 주장하였다.
송시열은 효종 사망 후 일어난 1차 예송인 기해예송(1659년)에서 효종이 차자임을 들어 1년복인 기년설을 주장하였다.
- ②지전설을 주장한 의산문답을 집필하였다.
지전설과 무한우주론을 담은 의산문답을 저술한 인물은 조선 후기 중상학파 실학자 홍대용이다.
- ③양명학을 연구하여 강화학파를 형성하였다.
양명학을 체계적으로 연구하고 강화학파를 형성한 인물은 정제두이다.
- ④역대 명필을 연구하여 추사체를 창안하였다.
역대 서체를 연구하여 독창적인 추사체를 창안한 인물은 김정희이다.
- ⑤양반의 허례와 무능을 풍자한 양반전을 지었다.
양반전을 지어 양반의 허례허식과 무능을 풍자한 인물은 연암 박지원이다.
핵심 정리
- 송시열은 효종 즉위 직후 북벌 의지를 담은 기축봉사를 올렸다.
- 1차 예송(기해예송)에서 서인의 기년설(1년복)을 주장하여 관철시켰다.
- 숙종 때 희빈 장씨 소생의 원자 책봉에 반대하다가 기사환국으로 유배된 뒤 사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