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능검CBT

제75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 (심화) 7번

3점삼국·가야고구려, 천리장성, 연개소문

다음 자료에 나타난 상황 이후에 있었던 사실로 옳은 것은?

7번 문항: 다음 자료에 나타난 상황 이후에 있었던 사실로 옳은 것은?
정답과 해설 보기해설 접기
정답④

자료 분석

당나라 사신 장손사가 수나라 병사의 유골을 모은 경관을 헐고, 고구려가 당의 침략에 대비하여 부여성에서 바다(비사성)에 이르는 천리장성을 축조하기 시작한 상황이다. 이는 고구려 영류왕 때인 631년에 해당한다.

정답 해설

천리장성 축조를 감독하던 연개소문은 642년에 정변을 일으켜 영류왕을 시해하고 권력을 장악하였으므로 제시된 상황 이후의 사실에 해당한다.

보기 해설

  • ①
    을지문덕이 살수에서 대승을 거두었다.

    고구려 영양왕 때인 612년에 을지문덕이 수나라 군대를 살수에서 크게 격파하였으므로 제시된 상황 이전의 사실이다.

  • ②
    고구려가 신라에 침입한 왜를 물리쳤다.

    고구려 광개토대왕 때인 400년에 신라를 구원하여 왜군을 격퇴하였으므로 제시된 상황 이전의 사실이다.

  • ③
    김무력이 관산성에서 백제군을 격파하였다.

    신라 진흥왕 때인 554년에 관산성 전투에서 백제 성왕의 군대를 격파하였으므로 제시된 상황 이전의 사실이다.

  • ④
    연개소문이 정변을 일으켜 권력을 장악하였다.

    천리장성 축조를 지휘하던 연개소문이 642년에 정변을 일으켜 영류왕을 시해하고 권력을 장악하였으므로 제시된 상황 이후의 사실이다.

  • ⑤
    백제가 평양성을 공격하여 고구려 왕이 전사하였다.

    백제 근초고왕 때인 371년에 백제군이 평양성을 공격하여 고구려 고국원왕이 전사하였으므로 제시된 상황 이전의 사실이다.

핵심 정리

  • 고구려 영류왕 때 당나라 침략에 대비하여 천리장성 축조 시작(631년)
  • 천리장성 축조를 감독하던 연개소문의 정변과 권력 장악(642년)
  • 고구려 대외 항쟁의 흐름: 살수대첩(612년) → 천리장성 축조(631년) → 연개소문 정변(642년) → 안시성 전투(645년)
삼국·가야고구려, 천리장성, 연개소문교차 검증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