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6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 (심화) 18번
1점고려원 간섭기, 충렬왕, 응방
다음 가상 뉴스 이후에 있었던 사실로 옳은 것은?

정답과 해설 보기해설 접기
정답③
자료 분석
세자 시절 원 세조의 딸 제국대장공주와 혼인하고 신하들의 변발을 질책한 국왕은 고려 충렬왕이다. 겁령구(공주의 수행 시종)를 대동한 원 황녀의 입국 등은 충렬왕 즉위년(1274) 무렵 원 간섭기가 본격화되는 상황을 가리킨다.
정답 해설
원 간섭기 충렬왕 때 원 황실에 보낼 매를 잡고 사육·훈련하기 위한 전담 기구인 응방이 설치되었다.
보기 해설
- ①쌍기의 건의로 과거제가 도입되었다.
고려 광종 때 후주 출신 귀화인 쌍기의 건의를 받아들여 과거제가 처음 도입되었다.
- ②빈민 구제를 위해 흑창이 설립되었다.
고려 태조 때 춘대추납 방식의 빈민 구제 기구로 흑창이 설치되었다.
- ③매를 기르고 훈련시키는 응방이 설치되었다.
원 간섭기 충렬왕 때 원나라 황실에 보낼 사냥매를 사육하고 조달하기 위해 응방이 설치되었다.
- ④의천이 국청사를 중심으로 천태종을 개창하였다.
고려 중기 숙종 때 대각국사 의천이 국청사를 중심으로 해동 천태종을 개창하였다.
- ⑤망이·망소이가 가혹한 수탈에 저항하여 봉기하였다.
무신 집권기인 명종 때 공주 명학소에서 망이와 망소이가 가혹한 수탈에 맞서 봉기하였다.
핵심 정리
- 충렬왕의 즉위와 부마국 체제: 원 세조의 딸 제국대장공주와 혼인하여 부마국이 되었고 몽골풍(변발과 호복)이 도입되었다.
- 응방 설치: 원나라 황실에 보낼 사냥매를 조달하고 훈련하기 위해 설치된 관청으로 농민에게 큰 폐단을 끼쳤다.
- 원 간섭기 관제 격하와 수탈: 2성 6부가 첨의부와 4사로 격하되었고 정동행성 이문소 설치 및 처녀·환관·금은·매 등의 공납 요구가 이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