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능검CBT

제77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 (심화) 22번

2점조선 후기병자호란, 북벌 운동

다음 시나리오의 상황 이후에 전개된 사실로 옳은 것은?

22번 문항: 다음 시나리오의 상황 이후에 전개된 사실로 옳은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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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답⑤

자료 분석

남한산성, 칸(청 태종)의 항복 요구 서신, 척화파 김상헌과 주화파 최명길의 대립을 통해 1636년에 일어난 병자호란 당시의 상황임을 알 수 있다.

정답 해설

병자호란에서 삼전도의 굴욕을 겪은 후 즉위한 효종은 청에 당한 수치를 씻고 명에 대한 의리를 지킨다는 명분으로 북벌을 추진하였다. 이때 어영청을 중심으로 군사력을 증강하였으며, 이완을 어영대장으로 임명하여 북벌을 준비하도록 하였다.

보기 해설

  • ①
    강홍립 부대가 사르후 전투에 참전하였다.

    조선 광해군 때 명의 원병 요청으로 강홍립이 군대를 이끌고 사르후 전투(1619년)에 참전한 것으로, 병자호란 이전의 사실이다.

  • ②
    김종서가 두만강 일대에 6진을 개척하였다.

    조선 전기 세종 때 김종서를 파견하여 두만강 일대에 6진을 개척하고 국경선을 확정하였다.

  • ③
    김시민이 진주성 전투에서 크게 승리하였다.

    임진왜란 중인 1592년에 진주목사 김시민이 진주성 전투에서 왜군을 크게 무찔렀다.

  • ④
    이종무가 왜구의 근거지인 쓰시마섬을 정벌하였다.

    조선 전기 세종 때인 1419년에 이종무가 왜구의 본거지인 쓰시마섬을 정벌하였다.

  • ⑤
    이완이 어영대장으로 임명되어 북벌을 준비하였다.

    병자호란 이후 즉위한 효종은 청에 대한 치욕을 씻기 위해 이완을 어영대장으로 삼고 송시열 등과 함께 북벌을 추진하였다.

핵심 정리

  • 병자호란(1636) 당시 척화론(김상헌)과 주화론(최명길)의 대립 및 남한산성 피란
  • 삼전도의 굴욕과 청과의 사대 관계(군신 관계) 성립
  • 효종 시기 송시열과 어영대장 이완 중심의 북벌 운동 추진
  • 군비 확충 과정에서 청의 요청으로 러시아를 정벌한 나선 정벌(변급, 신류)
조선 후기병자호란, 북벌 운동교차 검증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