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7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 (심화) 28번
2점조선 후기임술 농민 봉기, 삼정이정청
다음 자료에 나타난 상황 이후의 사실로 옳은 것은?

정답과 해설 보기해설 접기
정답③
자료 분석
진주 안핵사 박규수, 난민, 환곡과 향곡의 고통, 진주에서 부과한 세금 등의 단서를 통해 1862년(철종 13년)에 일어난 진주 농민 봉기(임술 농민 봉기) 수습 과정에서 안핵사 박규수가 올린 상소임을 알 수 있다.
정답 해설
임술 농민 봉기(1862년)가 전국으로 확산되자 조선 조정은 안핵사 박규수의 건의를 수용하여 삼정의 문란을 바로잡기 위한 임시기구로 삼정이정청을 설치하였다.
보기 해설
- ①홍경래 등이 봉기하여 정주성을 점령하였다.
홍경래의 난은 순조 때인 1811년에 서북인에 대한 차별과 지배층의 가혹한 수탈에 반발하여 일어난 사건으로 제시된 상황 이전의 사실이다.
- ②신돈이 중심이 되어 전민변정 사업을 운영하였다.
신돈이 중심이 되어 전민변정도감을 설치하고 권문세족이 불법으로 빼앗은 토지와 노비를 원주인에게 돌려준 것은 고려 말 공민왕 때의 사실이다.
- ③삼정의 문란을 시정하고자 삼정이정청이 설치되었다.
진주 농민 봉기 이후 농민 봉기가 전국으로 확산되자 정부는 안핵사 박규수의 건의를 받아들여 삼정의 문란을 해결하고자 삼정이정청을 설치하였다.
- ④기금의 이자로 빈민을 구휼하는 제위보가 만들어졌다.
기금을 마련하여 그 이자로 빈민을 구호하고 환자를 치료하는 제위보가 설치된 것은 고려 광종 때의 사실이다.
- ⑤황사영이 외국 군대의 출병을 요청하는 백서를 작성하였다.
황사영 백서 사건은 순조 즉위 초 신유박해(1801년) 때 황사영이 베이징의 주교에게 서양 군함의 파견을 요청하려다 발각된 사건으로 제시된 상황 이전의 사실이다.
핵심 정리
- 임술 농민 봉기(1862년): 경상우병사 백낙신의 탐학에 맞서 유계춘 등이 진주에서 봉기하였으며 이후 전국으로 확산되었다.
- 안핵사 박규수: 봉기를 조사하기 위해 파견되어 난의 근본적인 원인을 삼정(특히 환곡)의 문란으로 지목하고 개혁을 건의하였다.
- 삼정이정청 설치: 삼정의 문란을 바로잡기 위해 설치되었으나 지배층의 반발로 큰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곧 폐지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