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8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 (심화) 7번
1점삼국·가야대야성 전투, 황산벌 전투
다음 상황 이후에 있었던 사실로 옳은 것은?

정답과 해설 보기해설 접기
정답④
자료 분석
대야성에서의 싸움, 김춘추의 딸이자 도독 김품석 아내의 죽음, 김춘추가 고구려에 군사를 청하러 간다는 내용을 통해 백제 의자왕의 침공으로 신라 대야성이 함락된 642년(선덕여왕 11년)의 상황임을 알 수 있다.
정답 해설
제시된 대야성 함락(642년) 이후 김춘추가 당과의 외교를 통해 나·당 동맹(648년)을 결성하였고, 이후 나·당 연합군이 백제를 공격하자 계백이 황산벌에서 맞서 싸운 것(660년)은 상황 이후에 일어난 사실이다.
보기 해설
- ①진흥왕이 대가야를 병합하였다.
신라 진흥왕이 대가야를 병합한 것은 562년으로 제시된 상황 이전의 사실이다.
- ②이사부가 우산국을 복속시켰다.
신라 지증왕 때 이사부가 우산국을 복속시킨 것은 512년으로 제시된 상황 이전의 사실이다.
- ③을지문덕이 살수에서 대승을 거두었다.
고구려 을지문덕이 수나라 군대를 살수에서 물리친 살수 대첩은 612년으로 제시된 상황 이전의 사실이다.
- ④계백이 이끄는 군대가 황산벌에서 항전하였다.
나·당 연합군의 공격에 맞서 백제 계백 장군이 5천 결사대를 이끌고 황산벌에서 항전한 것은 660년으로 제시된 상황 이후의 사실이다.
- ⑤광개토 대왕이 신라에 침입한 왜를 격퇴하였다.
고구려 광개토 대왕이 신라를 구원하여 침입한 왜를 격퇴한 것은 400년으로 제시된 상황 이전의 사실이다.
핵심 정리
- 대야성 함락(642): 백제 의자왕의 공격으로 대야성이 함락되고 김춘추의 딸 등이 사망함
- 나·당 동맹 결성(648): 고구려 원병 요청 실패 후 김춘추가 당나라와 군사 동맹을 맺음
- 황산벌 전투 및 백제 멸망(660): 계백의 5천 결사대가 항전하였으나 패배하고 사비성이 함락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