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능검CBT

제78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 (심화) 37번

3점일제강점기암태도 소작 쟁의, 조선 농민 총동맹

다음 판결 이후에 있었던 사실로 옳은 것은?

37번 문항: 다음 판결 이후에 있었던 사실로 옳은 것은?
정답과 해설 보기해설 접기
정답③

자료 분석

제시된 판결문은 피고 서태석, 암태소작인회, 지주 문재철과 그 부친 문태현 등의 단서를 통해 전라남도 무안군 암태도에서 일어난 암태도 소작 쟁의(1923~1924) 관련 재판 기록임을 알 수 있다. 사료 본문에서 1923년 암태소작인회 조직을 2년 전, 1924년 문태현 송덕비 파괴 사건을 지난해로 언급하고 있으므로 1925년에 내려진 판결임을 알 수 있다.

정답 해설

제시된 판결문은 암태도 소작 쟁의(1923~1924)와 관련하여 1925년에 내려진 판결이다. 조선 노농 총동맹에서 분리되어 결성된 전국 단위 조직인 조선 농민 총동맹은 1927년에 결성되었으므로 판결 이후의 사실로 옳다.

보기 해설

  • ①
    지계아문이 설치되어 지계가 발급되었다.

    대한제국은 광무개혁 시기인 1901년에 지계아문을 설치하고 근대적 토지 소유권 증명서인 지계를 발급하였다.

  • ②
    회사 설립을 허가제로 하는 회사령이 제정되었다.

    일제는 1910년에 회사 설립을 조선 총독의 허가를 받도록 규정한 회사령을 제정하였다.

  • ③
    전국 단위 조직인 조선 농민 총동맹이 결성되었다.

    1924년에 결성되었던 조선 노농 총동맹이 노동 운동과 농민 운동의 전문화에 따라 1927년에 조선 노동 총동맹과 조선 농민 총동맹으로 분리되어 결성되었다.

  • ④
    일본의 토지 침탈에 맞서 농광 회사가 설립되었다.

    1904년 일본이 황무지 개간권을 요구하자 이에 맞서 보안회가 결성되었고 관료와 유생을 중심으로 농광 회사가 설립되었다.

  • ⑤
    경복궁에서 최초로 조선 물산 공진회가 개최되었다.

    일제는 식민 통치 5주년을 기념하여 1915년에 경복궁의 여러 전각을 철거하고 조선 물산 공진회를 개최하였다.

핵심 정리

  • 암태도 소작 쟁의(1923~1924): 서태석 등이 암태소작인회를 조직하여 지주 문재철의 고율 소작료 징수에 맞서 단식 투쟁 등을 전개하고 소작료 인하를 이끌어 냈다.
  • 조선 농민 총동맹(1927): 1924년 창립된 조선 노농 총동맹이 1927년에 노동 분야와 농민 분야로 분화하면서 결성된 전국 규모의 농민 조직이다.
  • 1920년대 농민 운동의 변화: 초기에는 소작료 인하 등 생존권 투쟁 중심이었으나 후기로 갈수록 계급적 항일 민족 운동의 성격을 띠게 되었다.
일제강점기암태도 소작 쟁의, 조선 농민 총동맹교차 검증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