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9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 (심화) 6번
밑줄 그은 ‘이 탑’으로 옳은 것은?

정답과 해설 보기해설 접기
자료 분석
신라와 연합하여 백제를 멸망시킨 당의 장수 소정방이 1층 탑신에 백제 정벌 기념 글귀(대당평백제국비명)를 새겨 한때 평제탑으로 불렸다는 점, 사찰 명칭이 적힌 기와가 출토되었다는 점, 익산 미륵사지 석탑과 함께 백제를 대표하는 석탑이라는 설명을 통해 밑줄 그은 이 탑이 백제의 부여 정림사지 오층 석탑임을 알 수 있다.
정답 해설
1번은 백제의 부여 정림사지 오층 석탑이다. 백제의 전형적인 석탑 양식을 확립한 탑으로, 당의 장수 소정방이 백제를 멸망시킨 뒤 탑신에 대당평백제국비명을 새겨 넣어 한때 평제탑으로 불렸다.
보기 해설
- ①(사진) 부여 정림사지 오층 석탑
정답이다. 부여 정림사지 오층 석탑은 백제의 대표적인 석탑으로, 좁고 낮은 단층 기단과 처마 끝의 날렵한 반전 등 세련되고 정제된 조형미를 보여준다.
- ②(사진) 경주 불국사 다보탑
오답이다. 경주 불국사 다보탑은 통일 신라 경덕왕 때 건립된 석탑으로, 목조건축의 구조를 가미한 독창적이고 화려한 장식미를 띤다.
- ③(사진) 발해 영광탑
오답이다. 당의 전탑 양식을 수용하여 벽돌로 쌓은 발해의 5층 전탑(영광탑)으로, 탑 아래에 무덤방과 유사한 지하 공간(지궁)이 조성되어 있다.
- ④(사진) 구례 화엄사 사사자 삼층석탑
오답이다. 구례 화엄사 사사자 삼층석탑은 통일 신라 시대에 건립된 이형 석탑으로, 기단부에 네 마리의 사자가 상층 기단을 받치고 있는 특이한 형태이다.
- ⑤(사진) 서울 원각사지 십층석탑
오답이다. 서울 원각사지 십층석탑은 조선 세조 때 대리석으로 건립된 석탑으로, 고려 후기의 개성 경천사지 십층석탑 양식을 이어받았다.
핵심 정리
- 부여 정림사지 오층 석탑: 소정방이 1층 탑신에 전승 기공문을 새겨 평제탑으로 불리기도 한 백제의 대표 석탑이다.
- 익산 미륵사지 석탑: 목탑의 축조 방식을 석재로 구현한 현존 최고이자 최대의 백제 석탑이다.
- 발해 영광탑: 벽돌로 축조된 5층 전탑으로 지하에 무덤방 형태의 지궁이 있는 발해의 대표 석탑이다.
- 경천사지 십층석탑과 원각사지 십층석탑: 고려 후기 원의 영향을 받은 대리석 석탑의 전통이 조선 전기로 계승되었다.
검수 중 · [교차 검증 2회 반려] [choices[4].text] 5번 보기의 사진은 서울 원각사지 십층석탑이 아니라 통일 신라 시대의 충주 탑평리 칠층석탑(중앙탑)입니다. → (사진) 충주 탑평리 칠층석탑; [choices[4].explanation] 5번 보기의 사진(충주 탑평리 칠층석탑)을 서울 원각사지 십층석탑으로 잘못 판독하여 해설하였습니다. → 오답이다. 충주 탑평리 칠층석탑은 통일 신라 시대에 건립된 화강암 석탑으로, 통일 신라의 중앙에 위치한다고 하여 ‘중앙탑’으로도 불린다.; [keyPoints[3]] 5번 보기 사진을 원각사지 십층석탑으로 오인하여 문항과 무관한 핵심 요점이 포함되었습니다. → 충주 탑평리 칠층석탑: 통일 신라 시대에 건립된 유일한 7층 석탑으로 중앙탑이라고도 불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