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0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 (심화) 3번
2점삼국·가야금관가야, 가야
(가) 나라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정답과 해설 보기해설 접기
정답①
자료 분석
수로왕이 건국했다는 기록과 김해 양동리 고분군이라는 유적 명칭을 통해 (가) 나라가 금관가야임을 알 수 있다.
정답 해설
금관가야는 6세기 전반인 532년(법흥왕 19년)에 신라에 항복하여 복속되었다.
보기 해설
- ①법흥왕 때 신라에 복속되었다.
금관가야는 532년(법흥왕 19년) 마지막 왕인 김구해가 신라에 항복하면서 신라에 복속되었다.
- ②유학 교육 기관으로 주자감을 두었다.
주자감은 발해의 최고 국립 유학 교육 기관이다.
- ③지방에 22담로를 두어 왕족을 파견하였다.
지방 22담로에 왕족을 파견하여 지방 통제를 강화한 나라는 백제 무령왕 때이다.
- ④화백 회의에서 국가의 중대사를 논의하였다.
귀족들이 만장일치제로 국가의 중대사를 결정한 화백 회의는 신라의 귀족 회의체이다.
- ⑤단궁, 과하마, 반어피 등의 특산물이 있었다.
단궁, 과하마, 반어피는 초기 철기 시대 동예의 대표적인 특산물이다.
핵심 정리
- 금관가야는 김해를 중심으로 전기가야 연맹을 주도하였고 532년 신라 법흥왕 때 복속되었다.
- 대가야는 고령을 중심으로 후기가야 연맹을 주도하였고 562년 신라 진흥왕 때 멸망하였다.
- 가야는 풍부한 철을 생산하여 낙랑과 왜 등에 수출하였으며 덩이쇠를 화폐처럼 사용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