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0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 (심화) 11번
2점고려고려 대외 관계, 대몽 항쟁, 진포 대첩
(가)~(다)를 일어난 순서대로 옳게 나열한 것은?

정답과 해설 보기해설 접기
정답②
자료 분석
(가)는 이자겸과 척준경이 금의 사대 요구를 수용하자고 건의한 사실(1126년, 인종)을 나타낸다. (나)는 나세, 심덕부, 최무선 등이 화포를 활용해 왜구를 격퇴한 진포 대첩(1380년, 우왕)이다. (다)는 몽골의 5차 침입 때 김윤후가 노비문서를 불태우고 관작을 약속하며 군사들을 독려하여 충주성을 방어한 사실(1253년, 고종)이다.
정답 해설
금의 사대 요구 수용(1126년), 김윤후의 충주성 전투(1253년), 최무선 등의 진포 대첩(1380년) 순으로 전개되었으므로 (가) - (다) - (나)가 옳다.
보기 해설
- ①(가) - (나) - (다)
진포 대첩(1380년)은 충주성 전투(1253년)보다 나중에 일어났다.
- ②(가) - (다) - (나)
이자겸의 금 사대 수용(1126년), 김윤후의 충주성 전투(1253년), 최무선 등의 진포 대첩(1380년) 순으로 일어났다.
- ③(나) - (가) - (다)
진포 대첩(1380년)은 고려 말 우왕 때 일어난 사건으로 제시된 사건 중 가장 늦다.
- ④(나) - (다) - (가)
진포 대첩(1380년)이 가장 늦게 일어났으며 이자겸의 금 사대 수용(1126년)이 가장 먼저 일어났다.
- ⑤(다) - (가) - (나)
이자겸의 금 사대 수용(1126년)은 김윤후의 충주성 전투(1253년)보다 앞서 일어났다.
핵심 정리
- 이자겸의 금 사대 요구 수용(1126년): 문벌 귀족의 권력 유지를 위한 사대 외교
- 김윤후의 대몽 항쟁: 처인성 전투(1232년, 살리타 사살), 충주성 전투(1253년, 노비 등 민중 항쟁)
- 고려 말 왜구 격퇴: 홍산 대첩(최영, 1376년), 진포 대첩(최무선, 1380년), 황산 대첩(이성계, 1380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