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1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 (심화) 6번
3점삼국·가야개로왕, 장수왕, 남진 정책
다음 상황이 나타난 배경으로 옳은 것은?

정답과 해설 보기해설 접기
정답⑤
자료 분석
자료는 472년(연흥 2년) 백제 개로왕(여경)이 북위에 보낸 국서의 내용이다. 고구려가 남진하여 위협하자 백제 개로왕이 북위에 군사를 보내 구원해 줄 것을 요청하고 있다.
정답 해설
고구려 장수왕이 427년 평양으로 천도하고 적극적인 남진 정책을 펴 백제를 압박하자, 위기를 느낀 백제 개로왕이 북위에 사신을 보내 고구려를 칠 군사를 요청하였다.
보기 해설
- ①을지문덕이 살수에서 승리하였다.
고구려의 을지문덕이 살수에서 수나라 군대를 격퇴한 살수대첩은 612년(영양왕 때)의 일이다.
- ②동성왕이 나제 동맹을 강화하였다.
백제 동성왕이 신라와 혼인 관계를 맺어 나제 동맹을 강화한 것은 한성 함락 이후인 493년의 일이다.
- ③성왕이 관산성 전투에서 전사하였다.
백제 성왕이 한강 유역을 되찾기 위해 신라와 싸우다 관산성에서 전사한 것은 554년의 일이다.
- ④계백의 결사대가 황산벌에서 패배하였다.
계백의 결사대가 황산벌에서 신라군에 패배하고 백제가 멸망한 것은 660년(의자왕 때)의 일이다.
- ⑤장수왕이 평양으로 천도하고 남진을 추진하였다.
고구려 장수왕이 평양으로 천도하고 남진 정책을 적극 추진하자 위기를 느낀 백제 개로왕이 북위에 군사 원조를 요청하였다.
핵심 정리
- 고구려 장수왕의 평양 천도와 남진 정책 추진(427년)
- 백제 비유왕과 신라 눌지왕의 나제 동맹 체결(433년)
- 백제 개로왕의 북위 군사 원조 요청 국서 발송(472년)
- 고구려의 한성 함락 및 개로왕 전사, 백제의 웅진 천도(475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