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9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 (심화) 23번
2점조선 후기병자호란, 북벌 운동
밑줄 그은 '이 전쟁'의 영향으로 가장 적절한 것은?

정답과 해설 보기해설 접기
정답①
자료 분석
자료에서 강도의 변으로 처가 잡혀갔다가 속환되었다는 신풍부원군 장유의 상소, 강화도 함락, 국왕이 삼전도에서 항복하여 종결되었다는 서술 등을 통해 밑줄 그은 이 전쟁이 1636년에 일어난 병자호란임을 알 수 있다.
정답 해설
병자호란 이후 조선에서는 청에 대한 굴욕을 씻고 명에 대한 의리를 지키자는 명분으로 효종 대에 송시열과 어영대장 이완 등을 중심으로 청을 정벌하자는 북벌 운동이 적극 추진되었다.
보기 해설
- ①이완 등을 중심으로 북벌이 추진되었다.
병자호란의 패배 이후 효종 대에 청에 당한 수치를 씻고 명에 대한 의리를 지키기 위해 송시열, 이완 등을 중심으로 북벌론이 추진되었다.
- ②김종서가 두만강 일대에 6진을 개척하였다.
조선 전기 세종 대에 김종서를 파견하여 두만강 일대에 6진을 개척하였다.
- ③이종무가 적의 근거지인 쓰시마섬을 정벌하였다.
조선 전기 세종 대에 이종무를 파견하여 왜구의 근거지인 쓰시마섬을 정벌하였다.
- ④강홍립이 이끄는 부대가 사르후 전투에 참전하였다.
광해군 대에 명의 지원 요청으로 강홍립이 군대를 이끌고 사르후 전투에 참전하였으며, 이는 병자호란 이전의 사실이다.
- ⑤국방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비변사가 처음으로 설치되었다.
조선 전기 중종 대에 일어난 삼포왜란(1510)을 계기로 국방 문제를 논의하는 임시 기구인 비변사가 처음 설치되었다.
핵심 정리
- 병자호란(1636): 청의 침입, 남한산성 항전, 삼전도의 굴욕
- 북벌론: 효종 대에 송시열과 이완 등을 중심으로 청을 정벌하려 한 정책
- 전쟁의 피해: 소현세자와 봉림대군 및 많은 백성이 청에 포로로 끌려갔으며 환향녀 문제가 발생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