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7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 (심화) 15번
3점고려안향, 제왕운기
밑줄 그은 ‘인물’이 활동한 시기에 볼 수 있는 모습으로 가장 적절한 것은?

정답과 해설 보기해설 접기
정답①
자료 분석
소수 서원에 초상화가 봉안되어 있고 충렬왕 때 원에서 주희의 저서를 들여와 성리학을 본격적으로 소개하였다는 설명을 통해 밑줄 그은 인물이 고려 후기의 문신이자 유학자인 안향임을 알 수 있다.
정답 해설
안향이 활동하던 고려 충렬왕 대인 1287년에 이승휴가 단군조선부터 고려에 이르는 역사를 시 형식으로 엮은 제왕운기를 저술하여 바쳤으므로 적절하다.
보기 해설
- ①제왕운기를 읽고 있는 왕
이승휴는 안향이 활동하던 충렬왕 대에 단군부터 고려 충렬왕 대까지의 역사를 서사시로 서술한 제왕운기를 저술하였다.
- ②만동묘 복구를 건의하는 유생
만동묘는 조선 숙종 때 명나라 황제를 제향하기 위해 건립된 사당으로, 흥선대원군 때 철폐되었다가 이후 고종 대에 복구되었으므로 조선 후기 및 개항기 이후의 모습이다.
- ③동몽선습을 공부하는 서당 학동
동몽선습은 조선 중종 때 박세무가 저술한 아동용 유학 입문서이므로 조선 시대에 볼 수 있는 모습이다.
- ④독서삼품과 시행을 준비하는 관리
독서삼품과는 남북국 시대 통일 신라 원성왕 때 유학 경전의 이해 정도를 시험하여 관리를 채용하던 제도이다.
- ⑤주자소에서 계미자를 주조하는 장인
주자소를 설치하고 구리 활자인 계미자를 주조한 것은 조선 전기 태종 때의 사실이다.
핵심 정리
- 안향은 충렬왕 때 원에서 주자전서를 들여와 성리학을 소개하였고, 장학 기금인 섬학전 설치와 국학 진흥을 건의하였다.
- 이승휴는 충렬왕 때 상권에는 중국사, 하권에는 단군부터 고려까지의 우리 역사를 서술한 제왕운기를 저술하였다.
- 고려 후기 원 간섭기에는 성리학 전래와 더불어 이제현이 원의 수도 연경에 설치된 만권당에서 원의 유학자들과 교유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