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1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 (심화) 9번
1점고려고려, 태조
밑줄 그은 ‘왕’의 정책으로 옳은 것은?

정답과 해설 보기해설 접기
정답①
자료 분석
신숭겸 장군이 대구 공산 전투(927년)에서 후백제군에 포위되어 위기에 빠진 왕을 구하기 위해 왕의 갑옷을 대신 입고 싸우다 전사하였다는 내용을 통해 밑줄 그은 왕이 고려 태조 왕건임을 알 수 있다.
정답 해설
고려 태조 왕건은 백성의 생활 안정을 위해 조세를 감면하고 춘대납납 방식의 빈민 구제 기구인 흑창을 설치하였다. 이는 훗날 성종 때 의창으로 확대 개편되었다.
보기 해설
- ①빈민 구제를 위해 흑창을 설치하였다.
태조 왕건은 민생 안정을 위해 춘대납납의 빈민 구제 기구인 흑창을 설치하였다.
- ②12목에 지방관을 처음으로 파견하였다.
최승로의 시무 28조 건의를 수용하여 12목에 처음 지방관을 파견한 왕은 고려 성종이다.
- ③외침에 대비하여 개경에 나성을 축조하였다.
거란의 침입 이후 강감찬의 건의를 받아들여 개경 둘레에 나성을 축조하도록 한 왕은 고려 현종이다.
- ④관학 진흥을 목적으로 양현고를 운영하였다.
관학 진흥을 위해 장학 재단인 양현고를 설치하고 전문 강좌인 7재를 운영한 왕은 고려 예종이다.
- ⑤쌍기의 건의를 수용하여 과거제를 시행하였다.
후주 출신 귀화인 쌍기의 건의를 받아들여 과거제를 처음 도입한 왕은 고려 광종이다.
핵심 정리
- 고려 태조: 흑창 설치, 기인 제도·사심관 제도 실시, 훈요 10조 남김
- 고려 광종: 노비안검법 시행, 쌍기의 건의로 과거제 도입, 칭제건원(광덕·준풍)
- 고려 성종: 12목 설치 및 지방관 파견, 흑창을 의창으로 확대 개편, 국자감 정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