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2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 (심화) 24번
2점조선 전기한양도성, 정묘호란
밑줄 그은 '이 성곽'에 대한 설명으로 옳지 않은 것은?

정답과 해설 보기해설 접기
정답③
자료 분석
자료에서 한성부 도심의 경계를 표시하고 외부 침입을 방어하기 위해 축조되었으며, 총 둘레 약 18km에 4대문(숙정문, 흥인지문, 숭례문, 돈의문)과 4소문(창의문, 혜화문, 광희문, 소의문)을 갖추고 북악산, 인왕산, 목멱산, 낙산을 잇는 성곽이라는 단서를 통해 밑줄 그은 이 성곽이 한양도성임을 알 수 있다.
정답 해설
정봉수가 의병을 일으켜 후금의 침입에 맞서 항전한 곳은 평안도 철산의 용골산성이다. 따라서 한양도성에 대한 설명으로 옳지 않다.
보기 해설
- ①개국 초기 정도전 등이 설계하였다.
조선 건국 직후 정도전 등이 한양 천도와 도성 축조를 계획하고 사대문과 사소문의 이름을 유교 덕목에 따라 지었다.
- ②도성조축도감이 축조를 관장하였다.
태조 때 도성 축조를 전담하는 임시기구로 도성조축도감을 설치하여 전국에서 인력을 징발해 축조를 관장하였다.
- ③후금의 침입에 맞서 정봉수가 항전한 곳이다.
정봉수가 후금군에 맞서 항전한 곳은 정묘호란 때 평안도 철산의 용골산성이다.
- ④조선 시대 축성 기술의 변화 과정이 잘 나타나 있다.
한양도성은 태조 때 축성된 이후 세종, 숙종, 순조 대에 걸쳐 개축 및 보수되면서 성돌의 규격과 가공 방식 등 시대별 축성 기술의 변천이 잘 나타나 있다.
- ⑤일제 강점기 도시 정비 계획을 구실로 크게 훼손되었다.
일제강점기에 시가지 개수 계획과 전차 선로 개설, 남산의 조선신궁 건립 등을 구실로 성벽과 성문이 철거되거나 크게 훼손되었다.
핵심 정리
- 한양도성의 축조: 태조 때 도성조축도감을 설치하고 정도전 등의 주도로 내사산을 연결하여 축조하였다.
- 축성 기술 변천: 태조(토석 혼축 및 자연석), 세종(직사각형 석재), 숙종(정방형 규격화 석재) 시대를 거치며 축성 기술의 변화가 성벽에 남아 있다.
- 정묘호란과 용골산성: 1627년 정묘호란 때 의병장 정봉수는 철산 용골산성에서, 이립은 의주 용천에서 후금군에 맞서 항전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