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2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 (심화) 25번
2점조선 전기임진왜란, 행주대첩, 권율
다음 전투 이후에 전개된 사실로 옳은 것은?

정답과 해설 보기해설 접기
정답③
자료 분석
제시문의 '권율이 정병 4천 명을 뽑아 행주산 위에 진을 치고', '적이 결국 패해 후퇴하였다', 출처인 선조수정실록 등을 통해 1593년 2월에 일어난 행주대첩임을 알 수 있다.
정답 해설
행주대첩(1593년 2월) 이후 전세가 불리해진 왜군은 명나라와 휴전 회담을 진행하였으나 결렬되었고, 이에 왜군이 1597년에 다시 조선을 침략하여 정유재란이 발발하였다.
보기 해설
- ①최영이 홍산에서 대승을 거두었다.
고려 말 우왕 때인 1376년에 최영이 왜구를 격퇴한 홍산 대첩에 해당하므로 행주대첩 이전의 사실이다.
- ②이순신이 한산도 대첩에서 승리하였다.
임진왜란 초기인 1592년 7월에 전개된 해전으로, 행주대첩 이전의 사실이다.
- ③휴전 회담의 결렬로 정유재란이 시작되었다.
행주대첩 이후 전세가 불리해진 일본과 명 사이에 진행되던 휴전 회담이 결렬되자, 1597년에 왜군이 다시 침입하여 정유재란이 시작되었다.
- ④이종무가 왜구의 근거지인 쓰시마를 정벌하였다.
조선 전기 세종 때인 1419년에 이종무가 왜구의 근거지인 쓰시마섬을 정벌하였다.
- ⑤신립이 탄금대에서 배수의 진을 치고 왜군에 항전하였다.
임진왜란 발발 직후인 1592년 4월에 신립이 충주 탄금대에서 왜군과 맞서 싸운 전투로, 행주대첩 이전의 사실이다.
핵심 정리
- 임진왜란 3대 대첩: 한산도 대첩(이순신, 1592), 진주 대첩(김시민, 1592), 행주 대첩(권율, 1593)
- 임진왜란 전개 과정: 탄금대 전투(1592) -> 한산도 대첩(1592) -> 진주 대첩(1592) -> 평양성 탈환(1593) -> 행주 대첩(1593) -> 휴전 회담 -> 정유재란(1597) -> 명량 대첩(1597) -> 노량 대첩(1598)
- 권율은 이치 전투와 독산성 전투에서 승리한 뒤, 행주산성에서 관군, 승군, 의병, 부녀자가 함께 왜군을 크게 무찔렀다.